#1. 부모가 알고 있는 아이, 부모가 모르는 아이
자녀는 부모가 낳고 기르고 양육하였으며, 항상 세심하게 살피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나의 자녀에 대해 가장 많이 이해하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부모일 것이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들보다 자신들의 아이를 아는 사람을 없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날 학교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거나, 혹은 학원이나, 이웃에 의해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그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과연 내가 알고 있던 내 아이가 맞나?
가끔 상담실에 자녀를 데리고 상담을 받으러 오는 부모님들 중 자신들의 자녀가 그럴 줄 몰랐다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들의 알던 자녀의 모습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집에서 너무나도 조용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며 모범생 같은 아이였는데, 학교에서 친구를 괴롭히고 왕따를 시키는 주범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모범생이라고 믿었던 아이의 학교에서 모습이 부모가 알던 모습과는 달랐다는 사실을 과연 부모는 바로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도 대부분의 부모는 뭔가 오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거나, 자신의 아이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대방의 잘못이 있었을 것이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간혹, 학교폭력 중재를 의뢰받고 학교를 방문하고, 가해자 부모를 만나게 되는 경우, '우리 아이는 그럴 아이가 아니다'라고 부모가 강하게 주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 가해와 피해가 혼재되어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들도 많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대화를 나누다 보면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너무 모르고 있었구나'라고 느끼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무엇 때문에, 부모는 자녀의 본모습을 알지 못했을까? 왜 아이는 부모에게 자신의 본모습을 보이지 않았을까? 혹은 과연 아이의 본모습은 무엇일까?
#2. 자녀가 만들어 내는 두 가지 모습
"페르소나(Persona)"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지게 되는 공적인 가면으로, 상황에 맞게 다양한 정체성을 보여주는 공적인 얼굴들을 말한다. 사람은 한 개인으로서의 자기(self)가 존재하지만, 역할에 따라서 다양한 얼굴을 가지게 된다. 한 여성은 여성 자신으로서의 자기도 존재하지만, 부모님 앞에서는 딸의 모습으로, 직장에서는 직장인의 모습으로, 남편 앞에서는 아내의 모습으로, 자녀 앞에서는 엄마의 모습으로, 친구들 앞에서는 친구의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
다양한 페르소나를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융통성 있고 유연한 사람이라고 여기게 된다. 만약 친구 앞에서 엄마의 모습으로 친구들을 대한다거나, 직장에서 딸의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하게 된다면, 매우 부적절하고 불편한 느낌으로 인해 대인관계에 상당한 문제들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그 역할과 장소, 상황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변화들 속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바로 아무리 페르소나를 다양하게 활용할지라도, "자기(Self)"가 밑바탕에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자기"가 배제된 페르소나만 있다면, 이는 공적인 가면이 아니라 진짜 가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지나친 페르소나로 인해 진짜 자기를 상실하게 되면서 무엇이 진짜 자기인지 잃어버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아이들은 타고난 기질과 성장과정에서 형성된 성격으로 자기 고유만의 "개성(personality)"을 형성하게 된다. 이 "개성"을 통해 아이는 자신만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여러 자기만의 상호작용패턴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성장과정에서 자녀가 이중메시지에 노출되거나, 자기의 타고난 기질이나 성격과는 상반되는 양육을 경험하게 되면 자녀는 자연스럽게 또 다른 자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즉, 타인에게 보이려는 나와 타고난 나로 분리되는 것이다. 타인에게 보이려는 나는 페르소나라 할 수 있는데, 이 페르소나는 자신을 포장하고 무장할 수 있는 일종의 아이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자녀는 점점 인지가 발달하고 사회적 관계에서 무엇이 더 나를 유익하게 하는지를 깨닫게 되면서 이러한 또 다른 나를 발달시키게 된다. 집에서는 조용하고 수동적이던 아이가 친구들과 있을 때에는 수다쟁이에 장난꾸러기로 변하기도 하고, 집에서는 너무나도 활달하고 말도 잘하는 아이가, 학교에서는 수동적이고 과묵한 모습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별로 사귀지도 않고 대화도 하지 않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아이에 대해 교사가 우려의 마음으로 부모에게 이야기를 하면, 부모는 '우리 아이가요? 그럴 리가요? 집에선 얼마나 활발한데요?'라고 반문을 한다.
아이는 그 상황에서 무엇이 나에게 더 유익하고 편한지, 혹은 생존에서 더 적합한지를 판단하고 자신의 기질이나 성격에 맞게 선택을 하게 된다. 학교에서는 숨겨두었던 자신의 공격성이 과감 없이 드러나지만, 만약 집안에서의 부모의 양육 분위기가 엄격하거나 권위적이고, 부모 앞에서는 되도록 모범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자신에게 유익하다면, 아이는 학교와 가정에서의 모습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3. 건강한 자녀를 위한 "자기 개념"
인간이 아무리 다양한 페르소나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본질인 "자기"가 중심에 존재하는 가운데에서 공적 가면을 써야 한다. 그것이 건강한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아이들 역시 학교에서는 학생의 모습으로, 친구의 모습으로, 가정에서는 자녀의 모습으로의 역할이 바뀐다 할지라도, 자신의 본질인 "자기"는 항상 일관된 모습으로 존재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아이 자신의 가치관과 생활에 대한 태도로 대변된다. 그래서 집에서는 과묵하고 학교에서는 장난꾸러기라 할지라도, 본래의 아이의 모습은 늘 한결같아야 하는 것이다.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과묵할 때도 있고, 장난꾸러기일 때도 있는 것이다.
아이가 어떤 경우에도 본질인 "자기"를 잃지 않고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려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부모가 아이에 대해 잘 인지하고 아이가 자기 개념을 잘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자기 개념은 유아기 시기에 형성되기 시작하며, 아동기에 들어서서는 긍정적인 자기 개념은 자아존중감으로 발전하게 된다. 자기 개념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는 것으로 긍정적인 모습이던지, 부정적인 모습이 던지간에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아이 스스로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이해하게 되면, 이를 통해 가치관을 형성하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를 형성하게 된다.
자기 개념을 잘 형성한 아이는 성장과정에서 "자기"를 잃어버리지 않으면서도 공적인 페르소나를 잘 활용할 수 있다. 자기 스스로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이해하고 있기에 지나치게 애쓰거나 혹은 과장되거나, 또는 회피하기보다는 자기 그릇만큼의 역할에 충실하게 되며,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바람직한 방향인지를 선택하게 되며,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도 높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가 자기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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