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형 표현을 사용하는 아이
학교에서 돌아온 자녀에게 "오늘 학교 어땠니?"라고 물으면 "몰라" "생각 안 나"라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상담실에 내원하는 부모들 중 이러한 문제로 고민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우리 아이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지 않아요.', '뭘 물어보면 항상 모른다고만 해요'.
제대로 정확히 대답하지 않고 늘 모른다거나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대답을 하는 것을 '회피형 표현'이라고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회피형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여러 원인들이 있을 수 있는데, 심리적인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인지적인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며, 환경적인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 아이가 자주 회피형 표현을 사용한다면 원인이 무엇인지를 잘 살펴보고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1. 회피형 표현의 종류
직접적인 답변을 하지 않는다.
회피형 표현을 사용하는 아이들은 어떤 질문에 대해서 '몰라', '기억나지 않아', '나와 상관없어'라고 대답을 하며 직접적인 답변을 하지 않고 피한다. 회피형 표현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으로 아이들이 이러한 방법을 사용했을 때 부모가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자주 사용하게 된다.
주제를 전환한다.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마치 농담처럼 흐지부지 넘겨버린다. 엄마가 '오늘 학교 어땠니?'라고 질문을 했는데, '나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요'라고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엄마는 다시 묻기보다는 '어~ 그래, 아이스크림 줄까?'라고 주제가 바뀌게 된다. 아이는 이렇게 자신이 대답하기 싫은 주제를 자연스럽게 전환시키게 된다.
감정표현을 나타내지 않는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무덤덤한 감정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객관적으로 분명히 어떤 감정을 느낄만한 일임에도 그 일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이는 전형적인 회피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책임을 회피한다.
회피형 표현 중 하나는 바로 어떤 문제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남의 탓으로 돌리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제 때문이야'라고 말하며 자신의 잘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서 원인을 찾으려 한다.
침묵으로 일관한다.
회피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반응하기보다는 침묵하는 자세를 보인다.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어 버리는 것이다. 부부싸움을 할 때 부인이 화를 내고 있는데, 남편이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일 때 바로 회피형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는 청소년 자녀가 부모에게 화가 났을 때 대화를 단절하는 방법도 회피형 표현 중 하나이다.
2. 왜 회피형 표현을 사용하는가?
회피형 표현은 비단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많이 사용하게 된다. 주로 곤란하고 불안하고 피하고 싶을 때 많이 사용하게 되는데, 아이들은 주로 어떤 경우에 사용할까?
1) 심리적인 요인
회피형 표현과 관련된 심리적인 기저는 '불안'이다. 나의 대답이나 반응이 이후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 확신이 서지 않고 불안하거나, 비난이나 좌절, 거절에 대한 불안 등이 주된 기저라 할 수 있다. 엄마가 '오늘 학교에서 어땠어?'라고 질문을 했을 때, 불안한 아이는 나의 대답에 대해 엄마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혹시 나무라지는 않을지, 또는 내 학교 생활이 혹시 바람직하지 않았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과 불안이 기저에 깔리게 되는데, 이러한 경우 아이는 부모에게 별로 자신의 학교생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경우, 대체로 아이들은 완벽주의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가정에서 부모의 기대가 높고 성취에 대한 압력이 높은 경우 보일 수 있다.
또 다른 심리적인 요인으로는 '낮은 자존감'을 들 수 있다. 자존감이 낮은 아이들은 자기 신뢰감이 부족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대답에 대해 자신감이 없으며,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에 대해 중요한 가치를 두지 않는다. 따라서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표현하는데 억압적이고 미숙한 모습을 나타낸다. 또한 표현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을 한 경우, 아이는 회피적인 표현을 자주 사용하게 된다. 과거 자신이 한 표현에 대해 비난을 받은 경험이 있거나, 무시당한 경험이 있는 경우에 아이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데 두려움을 느끼며 회피하게 된다.
2) 환경적인 요인
회피적인 표현을 사용하게 하는 환경적인 요인은 먼저, 아이의 표현이 잘 수용되거나 공감되지 않는 양육환경의 문제를 들 수 있다. 가정 내 의사소통의 분위기가 다소 억압적이고, 어린 자녀의 표현이 무시되거나 수용되지 않는 분위기라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자기를 표현하는 것을 억압하게 되고, 또한 표현하는 방법을 학습하지 못함으로써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어떻게 대답을 하고 표현을 해야 하는지 막연하게 여기게 된다.
또는 부모의 사랑이 지나쳐서 아이의 모든 것을 해결해 주려는 부모의 경우, 자녀는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생각하고 해결하는 자기를 성장시키지 못함으로써 생각을 하지 못하는 아이로 성장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아이는 정말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라서 '몰라'라고 대답을 하기도 하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회피적인 표현을 사용하게 된다.
3) 인지적인 문제
때로는 아이가 인지적으로 상황을 잘 인식하지 못하거나 질문에 대하여 잘 이해하지 못하였을 때, 이를 무마하고 회피하기 위하여 회피형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주로 저학년 아이들에게서 보이는 모습인데, 부모나 교사가 어떤 질문을 했을 때,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 들었지만 이를 표현하지는 못하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그냥 '생각 안 나요'라든가 '모르겠어요'라고 대답을 하는 경우가 있다. 또는 또래에 비해 인지발달 수준이 낮은 경우, 문해능력이 떨어짐으로써 표현에도 어려움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종종 나타날 수 있다.
3. 회피형 표현을 사용하는 아이를 돕는 방법
억지로 대답하게 하지 않는다.
아이가 회피형 표현을 사용한다면, 억지로 대답을 강요하지 말고 '모른다'는 아이의 표현을 인정하고 수용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대답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가지고 기다려 준다. 아이가 대답하도록 재촉하고, 반복해서 물어보게 되면, 아이는 오히려 이를 더 불아하게 인식하게 되면서 자기표현에 대해 긴장을 경험하게 된다. 아이가 '모른다고~' '귀찮아~' '생각 안 나요~'라고 회피할 때, 부모는 '지금 생각이 안 나는구나. 잠시 생각해 보고 생각나면 얘기해 주렴~'이라고 여지를 남겨준다.
대체표현 알려주기
아이가 사용하는 회피적인 표현들을 수용해 주면서 '바꿔 말해주기'를 해준다.
- '몰라요'에 대해서는 '지금 바로 생각이 안 나는구나.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구나'이라고 바꿔 말해준다.
- 의견을 묻는 질문에 대해 '없어요'라고 말하는 아이에게는 '지금 별 의견은 없지만 다른 의견을 들어보고 얘기할 수 있어'라고 말해준다.
- '안 해요'라고 할 때는 '지금 바로 하기 어려워서 시간이 좀 필요하구나'라고 말해준다.
즉 부정적인 말을 긍정적인 말로 바꿔주는 것인데. "몰라요, 싫어요, 안 해요, 없어요"와 같은 부정적인 말을 '생각해 볼게요, 조금 시간을 주세요, 기다려볼게요' 등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표현으로 바꿔 말하도록 알려주는 것이다.
부모가 모델링이 되어준다.
회피형 표현을 주로 사용하는 경우, 부모가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아이에게 오늘 학교가 어땠는지 물었을 때, 아이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거나 모른다고 했을 때, 부모는 '생각이 나지 않는구나~ 엄마는 오늘~'이라며 엄마는 오늘 어땠는지, 어떤 기분이었고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를 간단하게 아이에게 표현해 주는 것이다. 엄마의 자기 이야기를 듣게 되면 아이도 자연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가르치려는 자세 No. 경청과 공감의 자세 갖기
아이들이 모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했는데, 부모가 그 이야기를 듣고 잔소리나 훈육모드로 돌입하게 되면, 아이는 다시 자기표현의 스위치를 꺼버리고, 다시는 자기표현을 하지 않으려 한다. 아이에게 오늘 어땠는지 물었을 때, 아이가 친구와 다툰 이야기를 했다면, 왜 싸웠는지 다그치거나 혼을 내거나, 또는 그럴 때는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설명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경험했을 감정에 대해 먼저 들어주고 수용해 주고 다독여주어야 한다. 훈육과 교육은 그다음이다. 아이가 자신이 표현하는 이 시간이 매우 안전하고 편안하며 신뢰로운 환경임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2023.10.07 - [우리아이 왜 그럴까] - 자존감이 낮은 아이: 자녀의 자존감 높이기
2023.07.06 - [우리아이 왜 그럴까] - 불안한 우리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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